매일매일 태어나는 사람

카페에 들어가 예언을 한 잔 시켰다

2022-04-021 min

#poem

카페에 들어가 예언을 한 잔 시켰다

간호사는 커튼 뒤에서 링거를 끌고 나와 왼팔에 꽂아주었다



십 분쯤 지났을까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는 바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알아 본 바람 하나가

커다란 날개 속에서 쪽지를 꺼내 건네주었다



거기엔 국화꽃이 그려져 있었다

향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려지지 않은 뿌리를 온 힘을 다해 뻗어내리려는

꽃의 마음이 그려져 있었다



값을 치르고 거리로 나와

서울식물원에 갔다

온실 안에는 그 어떤 계절도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입구에서 마지막 남은 얼굴을 맡겨야 했다



화단의 빈 자리를 찾아 국화꽃을 심었다

헌화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작별을 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살가죽도 팔다리도 다 벗어버리고

씨앗이 된 채로 잠이 들었다



이제 쪽지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알아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감

올해 2월 즈음에 쓴 시고, 문학광장 2022.3.4 잡지에 실렸다.

이제 시를 쓰기 시작한 지 2년 반가량 되었다. 시를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고, 쓰는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다. 쉬운 말로만 본문을 채우려 하고, 일기를 쓰듯이 마음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담담하게 묘사하려고 한다. 이런 글쓰기는 내 마음의 과부하를 줄여준다.

재작년 가을, 폐장 직전의 서울식물원을 다녀왔던 적이 있었다. 비바람이 불었고 나는 흠뻑 젖은 채였다. 시간이 늦어 온실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안쪽을 구경하기만 했다. 알 수 없는 상실감에 휩쓸려 있던 시절이라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좌절감이 크다는 건 거꾸로 내가 무엇인가 다른 미래를 간절히 꿈꾼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거라고. 그때의 간절함이 오랜 시간이 지나 이번 시에 녹아든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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