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수의 무게
갈수록 어려지는 사람과 갈수록 가벼워지는 대부님의 이야기
published at: 20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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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님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말라버린 꽃을 어떻게 버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대부님과는 몇 년만에 연락이 닿은 셈이었지만 여전히 젊은 남자라고 느껴졌다.
나는 서른이야.
그 목소리는 예전보다 카랑카랑해진 듯했다.
나는 커다란 가위를 꺼내 줄기를 어슷하게 썰고 부스러지는 이파리를 비닐봉지에 집어넣었다.
저는 스물다섯인데, 제가 더 나이든 것 같아요. 일의자리가 다섯이라 그런지도 몰라요.
넌 보통 사람과 다른 중력장의 영향을 받는 것 같았으니까. 대부님이 말했다. 확실히 그의 목소리는 어른의 목소리였다. 꽃잎이 마를수록 진해지는 것처럼 대부님 또한 무엇인가가 영글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가 시들어가는 속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 있지, 몸무게가 마이너스로 나와. 대부님이 말했다.
0보다 작게 나온다고요?
나도 이상해서 너한테 확인 받고 싶은 거야.
그러면서 메신저로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체중계 디지털 화면엔 정말로 ‘-10kg’ 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부님의 발가락은 남들보다 훨씬 길쭉했다. 그게 부끄러웠는지 잔뜩 움츠리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더더욱 독수리의 발톱 같았다.
어떻게 생각해? 체중계는 고장나지 않았어. 다른 신학생 친구들한테 올라가보라고 했는데 모두 적당한 몸무게가 나왔거든. 그런데 내가 올라가기만 하면 마이너스 10으로 내려가더라구. 물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어.
근데 왜 저예요? 내가 물었다. 그 다음에 끌려나올 뻔한 말은 삼켜둔 채로. 우리는 그렇게까지 끈끈한 사이도 아니었잖아요. 내가 불쾌한 비밀을 지켜줄 것 같아서 고른 건가요?
하지만 속엣말이라는 게 무색하게 대부님은 모든 걸 알아들었다. 그게 아니야 바오로. 나는 널 이용하려고 한 적 없어. 너도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잖아. 사실 넌 5년 전만 해도 서른 살이었으니까. 넌 매 순간 나이를 잃어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더 나이가 많아졌을 때 대부를 서 주기까지 했던 거잖아.
그렇지, 너무 오래 잊어버리고 있었던 내 세례명은 바오로였어. 복음을 수호하는 칼을 상징으로 갖고 있는 사나이. 예수를 반대하다 눈이 멀어버리고, 그를 신으로 모시기 시작하면서 시력을 돌려받게 되었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원하는 결말을 맞이한 사람들뿐. 결말이 없이 죽어버린 사람들은 잊혀지고 말겠지.
저는 오늘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라서요.
분리수거를 마치고 나면 해가 기울겠지. 그러면 마스크를 쓰고 도둑질을 하듯 황급히 감자와 양파를 사다가 돌아올 것이다. 저녁을 지어먹고 자정이 돌아오면 그래, 대부님의 말처럼 나는 0.1인치씩 키가 작아지고 혈색이 맑아지고 뼈가 물러질 것이다. 얼마 전에는 오래전에 뽑았던 사랑니의 자리에 새로운 유치가 돋아났다.
유일하게 기원으로 돌아가지 않는 바가 있다면 기억이 전부다. 시간의 호수 아래서 나를 지켜보는 영혼의 시선을 모른척한 지 오래되었다. 나와 그리고 불쌍한 나의 형이었던 대부님은, 아마 그도 느끼고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삶의 열매를 지속적으로 빼앗기고 있다는 기분을. 무게가 줄고 나이가 줄어드는 건 몸의 표현일 뿐이다. 잃어간다는 느낌, 그게 문제의 핵심이지만 이 빈곤함은 일종의 체질과도 같아서 몸을 교환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으리라 믿고 있다. 불구에 대한 확신만큼 강렬한 신앙이 또 있을까.
시간을 내어줄 수 있다면 베란다 창을 열어두고 있어.
대부님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가 부탁한 대로 창문을 열어두었다. 오염된 노을이 온 하늘을 흙탕물 색으로 적셔버리고 있었다. 검게 썩은 구름이 산마루부터 아파트 단지까지를 뒤덮었고 비릿한 바람이 불어왔다. 거친 소나기가 올 것이다. 아마도 무게가 없는 대부님은, 발전소 굴뚝 사이의 검은 점에서부터, 사선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활강해오려고 할 테지. 검은 점은 초승달처럼 길쭉해지더니 이윽고 번개의 빛나는 종잇장을 뚫고 베란다 앞까지 날아들었다. 대부님은 기다란 발가락으로 울타리를 붙들며 내게로 쓰러지듯 안겨들었다.
아, 정말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바람을 끌어안은 기분이었다. 나는 비에 젖은 그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커다란 타올로 등을 덮어주었다.
대부님은 타올조차 지고 있기 버겁다는 듯 타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저녁이 불어닥쳤다. 나는 창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올렸다. 생강차를 끓여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는 어깨를 떨며 몇 모금 마셨다.
고맙다.
달콤하고 떫은 향이 거실에 차오르는 게 마치 눈으로 보일 정도로, 우리는 아무런 기척을 내지 않았다. 시시각각 가벼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공기를 마시는 것조차 힘이 들구나.
몸무게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는 신학교에서 쫓겨날 것이고, 바오로의 시력을 되돌려 준 예언자도 만나지 못한 채 신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 속에 버려질 것이다.
원망스럽지 않아요?
누구에게, 무엇이? 왜?
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되묻자 오히려 할말이 없어진 쪽은 나였다.
그러게요.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축복일지도 모르는데.
축복도 없고 저주도 없어… 대부님이 미소지었다. 내겐 현재가 전부야. 잃어버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의 갖고 있음 말이야.
그거 알아요? 내가 말했다. 날아오시는 동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온 것 같아요.
거울을 가져다 주겠니? 걸을 힘이 없구나.
어디에도 그늘진 곳이 없이 완연한 흰빛을 풍기며 대부님이 말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기다란 거울을 잡아들었다. 어째서인지 거울이 한뼘 정도 더 길어진 기분이었지만 개의치 않고 허릿단에 힘을 주었다. 거실로 거울을 가져다가 그의 눈앞에 세워주었다. 그는 그림자 없는 자기를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대부님이 조그맣게 속삭이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부님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이것이 성경의 어느 구절인지를 알아들은 모양이었으나 나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거울 속의 남자는, 질량이 있는 대부님은 내가 구석에 버려 둔 꽃 봉지를 꺼내 우리가 보는 앞에서 열어 보였다. 이슬 맺힌 꽃망울이 반짝이는 와중에 싱그러운 풀냄새가 거울을 통해 밀려왔다. 부케의 원래 형상이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좋은 꽃을 받았었구나.
이것만이 내게 허락된 몫이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몫.
그녀는 너보다는 늙어갈 줄 아는 남자가 필요했을 거야…
형에게 끝끝내 신이 필요했던 것처럼.
나는 거울을 방으로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다시 거실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강차 냄새가 더는 느껴지지 않았고 마치 유언처럼, “아멘”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대신하여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이제와 영원히 받으소서.
소감
오랜만에 완성한 단편소설이다. 다시 보니 너무 현학적이라는 느낌이 들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