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포세, <이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에 대해 생각해 봤어

2020-12-073 min

#book

들어가며

노르웨이의 극작가 욘 포세(1959~). 희곡 <이름>은 임신한 처녀와 그의 남편이 될 청년이 부모님의 낡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딸이 임신을 해서 돌아왔지만 부모님과 여동생은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고, 저마다 일상의 비루한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 인용하는 2막의 장면은 태동을 일으키는 아기를 두고 청년과 처녀가 아이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줄지 고민하다가 나누는 대화의 일부이다.

본문 중에서

청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에 대해

생각해 봤어

(사이)


처녀: (짧게 웃는다)

그랬어?


청년: 응


처녀: 근데?


청년: 생각해 봤어

아기들이 태어나기 전에

모두 함께 모이는

아기들이 자기들 영혼 속에 존재하는

그런 곳이 있지

그런데 아기들은 자기들 방식으로

일종의 천사의 언어로

서로 얘기해

(그녀를 쳐다본다. 미소 짓는다)

아기들은 자기들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게

얼마나 나쁜지 자신에게 묻는 거야

아기들이 어디로 갈지, 다른 곳으로 결정되는 거지

아기들이 차례로 하나씩 결정되는 거야

그러면 한 아기가 말하지

난 노르웨이로 가


처녀: 뭘 꾸며 내는 거야?


청년: 그래

그다음 다른 아기 차례야

걔가 말하지

난 인도로 가

그리고 프랑스로 가고 싶은 애는

벨기에로 가야 해


처녀: 알았어, 알았어


청년: 도시로 가고 싶은 애는

시골로 떨어지고

걔는 다 자란 다음에야

도시에서 살 수 있지

그래서 모든 아기들이 긴장하고 있지

어떤 부모를 갖게 될까

끔찍하게 긴장하고 있어


처녀: 그럼 우리 아기도 실망하겠네


청년: 그리고 모든 아기들이 출생에 대해 끔찍하게 불안해 하지

태어난다는 건 쉬운 게 아냐

그건 힘든 일이야

부모가 어떤 사람들인지

누가 알겠어?


처녀: 오, 예, 이제 그만해


청년: 그리고 아기가 어떻게 생겼을지


처녀: 엄마인 나랑


청년: 그리고 어떤 애는 가난하게

어떤 애는 부자로

예쁘게 생기거나 못생기게 태어나지

아기들은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그런데 아기는 뱃속에서 벌써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


처녀: (웃는다)

불쌍한 아기


청년: 그래, 아기는

자기가 부모를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부모의 목소리와 정신을

자기가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알고 있어

(짧은 사이)

그런 거야

그리고 내 생각엔

(말을 중단한다)


처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네가 날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청년: 아기는 너무 긴장하고 있어

난 아기가 얼마나 긴장하는지 느껴

부모인 우리가 어떻게 생겼을까

세상은

어떨까


처녀: 그래


청년: 자기가 오게 될

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처녀: 그래


청년: 아기는 긴장하고 있어

부모인 우리가 어떻게 할까

우리는 어떻게 생겼고 어떤 사람일까


처녀: 그만하라니까

슬퍼진단 말이야


청년: 하지만 난 아기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어


처녀: (화를 낸다)

네 말은 비열해

(그를 쳐다본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그만해


청년: 태어나지 않은 모든 애들은

태어나지 않은 모든 애들이 있는 하늘에 있어

걔들은 아직 태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조용히 긴장하고 있어

그 사랑스러운 애들이 긴장하고 있어


처녀: 이제 그만해

무슨 책에나 있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말을 중단한다)


청년: 죽은 자들 또한 인간이듯

태어나지 않은 애들 또한 인간이니까

인간이 되려면

모든 인간을 생각해야 돼

모든 죽은 자들을

태어나지 않은 모든 자들을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을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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