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23 JUL 2026 — [10 MIN]

어촌 주민들이 사투리를 안 쓰는 우주적 이유 - 나홍진 <호프> 멋대로 감상평

지브리와 레버넌트를 삼킨 무한 장르 콜라주. 나홍진 <호프>를 스포일러 듬뿍 담아 해석해보자

나홍진 영화 <호프> 메인 포스터

얼토당토않은 시놉시스가 너무 멋져서

“…What begins as ignorance plants the seed of disaster, escalating through human conflict into a tragedy of cosmic proportions.”

“…무지가 빚어낸 불행의 씨앗은 입장의 차이를 거쳐 온 우주의 비극이 되고야 만다.”

  • 칸 영화제 공식 시놉시스

나홍진 신작 <호프>를 보기로 한 건 흥행 소식 때문이 아니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 선정, 6-7분 간의 기립박수, 200여 개 국가 선판매로 이미 200억 대 개런티 회수… 이런 것보다, 시놉시스의 마지막 문장 때문이었다. 시골 마을에서 우주적 비극이 벌어진다고? 뭔 소리지?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외계인과 사투를 벌인단다. 고민 없이 곧장 예매했고 개봉 이틀 차에 용산 아이맥스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엔딩 직후 감상평은 한 줄 요약하면 진짜 이랬다. “떴노라, 보았노라… 뭐였더라?” 서브컬처 인디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극한의 장르 믹스매치, 뇌절에 가까운 판타지적 결말을 한국영화 역대 최대 제작비(순제작비 약 500억 원)를 쏟아부은 작품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문장의 까마득한 낙차, 우주적 아이러니가 나를 영화관 좌석까지 이끌기는 했으나, 개봉 전 예고편과 스틸컷을 보면서는 기대감이 깎이기도 했었다. 구린 CG도 문제였지만 <기묘한 이야기> 같은 헐리우드 외계인 장르에 한국적 배경을 버무린 게 전부 아닌가?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도입부는 정말 그랬다. 범석(황정민)은 미스터리물 클리셰를 충실히 따랐고 (보안관 캐릭터가 주민들로부터 목격담을 듣는다. 외부 지원은 마뜩잖다. 캐릭터는 홀로 증거를 수집하며 현장을 탐색하고, 관객을 사건의 중심부로 안내한다), 배경이 7-80년대 남해안 어촌이라는 점 외에는 드라마 <X-파일>을 보는 듯한 기시감까지 들었다. 너른 벌판에 온몸이 찢긴 채 쓰러진 황소 시체라니. 텍사스 대농장에서나 볼 법한 철조망 울타리라니. UFO 스토리에서 빠지면 섭섭한 아이템 아닌가. “서구 관객 노린 <K-인디펜던스 데이> 맞구나. 익숙한 장르에 낯선 배경 얹어서 팔겠단 거네.” 어설프게 장르 영화에 손 댔다 폭망한 사례, <외계+인> 의 최후가 연상되면서 익숙한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불안감은 10분도 안 지나 완벽하게 배신당했다. 모든 클리셰는 “선수끼리 이러기야?” 라는 황홀한 불평이 나오게끔 오히려 정반대로 비틀기 위해 제시되는 것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이 삼켜버리는 장르와 레퍼런스는 정신없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블랙유머 SF에서 서부극 장르, <에일리언>, <레버넌트>를 거쳐, <모노노케 히메>, <벼랑 위의 포뇨>, 박찬욱과 봉준호, <놈놈놈>, <최종병기 활>에 이르렀다가 마침내 <어벤져스: 엔드게임> 식 대폭발로 정점을 찍는 순간 -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를 깨닫고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온전한 카타르시스를 즐겨버리고 말았다.

“그런 게 어디 있었다는 거야?” 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다. 충분히 말이 되는 반응이다. 감독은 고려한 적도 없는 사실을 나 혼자 침소봉대하는 걸지도 모른다. 차근차근 생각을 풀어볼 테니 대체 무슨 뜻인지 함께 확인해주시길 바란다. 작품의 설계도를 풀어헤칠 실마리는 의외로 뻔한 곳에 드러나 있다.

참고: 스포일러 영역을 친절하게 분리한 글이 아니다. 영화를 관람하고 읽기를 추천한다.

왜 아무도 사투리를 안 쓸까?

관객 후기 중 눈에 띄는 비평이 성애(정호연)의 대사와 톤이 어색하다는 거였다. 공감하면서도 동의할 수 없었다. 내 귀에는 모든 등장인물의 대사가 어색했다. 80년대 남해안 어촌이 배경인데도 청년과 노인, 주연과 엑스트라 가릴 것 없이 아무도 사투리를 쓰고 있지 않았다. 방언이라는 인상을 줄 만큼의 억양과 높낮이가 말의 흐름에 녹아 있을 뿐, 대사 속 단어들은 어떤 세대, 어떤 지역의 한국어 구사자가 듣더라도 오독의 여지가 없는 정제되고 표백된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이쯤에서 예고편이나 쇼츠 영상을 다시 보고 오시면 좋겠다. <곡성>과 <호프>를 비교해 보시길)

처음엔 비즈니스가 이유라고 생각했다. 국제 흥행을 노리는 액션 영화이니 대사는 섬세한 뉘앙스를 표현하기보다 스토리를 정확히 전달하고 각 나라 언어로 손쉽게 번역되는 걸 목표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라고.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미스터리 장르의 클리셰를 충실히 따른다면 <호프>의 스토리는 이랬어야 했다. 호포항은 외계인이 최초로 목격된 오지 중 하나로 소비되고, 문명 세계를 대표하는 보안관/수사관 캐릭터가 주민들의 알아듣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제보를 명석한 두뇌로 추리함과 동시에 뛰어난 전투력으로 현장에 뛰어들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낸다. 이러한 내러티브가 함의하는 바는 명확하다. 야만과 무지의 장막에 덮여 있는 세계의 외곽을 문명과 이성의 빛으로 밝혀내겠다는, 좋게 말하면 모험가 정신, 나쁘게 말하면 제국주의적 욕망이다. 공포의 대상이 그저 괴물이라면 제압한 뒤 연구소에 데려가 해부하고, 우리와 대등한 존재라면 “인류의 운명을 건 전투가 시작”된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마르고 닳도록 재탕하는 그 문구가 클리셰의 종착지이고, 마을 목격자들의 거친 사투리는 클리셰의 입구와 같다.

<호프>는 사투리가 표백된 한국어 대사로 한 번, 범석(황정민)의 어리숙함으로 또 한 번 클리셰를 부순다. 범석은 호랑이 출몰 신고를 듣고 정부 지원을 요청하지만(미스터리 클리셰) 지역 공무원들은 산불 진압 작전에 투입되어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밀실 스릴러 클리셰. 도입부의 이 짧은 상황 묘사 이후로 외부 세계에 대한 묘사가 아예 사라지다시피 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후 범석의 행보는 안타까울 정도로 에겐스럽다. 외계인이 건물 안에 숨어 있는 걸 발견하고도 무서운 나머지 굴다리에서 마주친 남자와 누가 먼저 진입하냐를 놓고 슬랩스틱 실랑이를 벌인다. 현장에서 마주치는 청년과 노인들은 범석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고래고래 면박을 준다. 백발이 성성한 할배, 할매로 구성된 향토예비군 팀은 흰색 트럭 위에서 능숙하게 M16A1을 장전하며 범석에게 삶은 감자를 건네기도 한다.

폐허가 된 거리에서 산탄총을 든 범석(황정민)

이렇듯 클리셰의 전형으로 소개된 범석은 초반의 추적 시퀀스에서 장르적 규칙을 모조리 위반한 다음, 여자 후배 성애(정호연)에게 구출되는 것으로 소위 말하는 ’막타’를 친다. 더 이상 범석은 미스터리 장르의 노련한 수사관이 아니다. 혼돈으로 점철된 호포항에 벌거벗은 채 던져진, ’뉴비’나 다름없는 실존적 인간일 뿐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이곳 동아시아에

범석이 나약하게 묘사된 것과 달리 <호프>의 노인들은 강인하고 유머러스하며 주체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우주전쟁>, <월드워 Z> 등 외계인이나 좀비가 등장하는 헐리우드 재난 서사에서 노인들은 여성, 어린이와 함께 구출되어야 하는 군중 엑스트라로 그려질 뿐이지만 호포항의 노인들은 젊은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투를 치르고(향토예비군 팀), 마을 사람 모두가 믿고 따르는 현자/장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해술, 임현식). <매트릭스>의 ’오라클’이 흑인 할머니로 묘사되기는 하나, 네오(그리고 관객)에게 감독의 의도를 전하는 신비주의적 해설자로 작동할 뿐이다. 오라클이 기계의 편에 선 프로그램인지 인간인지 아리송한 것과 달리 해술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호포항 사람이다. 외계인을 마주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도 똥이 마려워 엉금엉금 처절하게 기어갔다는 그의 목격담은 정말이지 영화의 백미다.

<호프>는 미스터리 장르에 한국적 겉모습을 섞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정신적인 측면(동아시아 공동체 사회, 주체적인 노인 캐릭터가 사회 전면에서 활동하는 모습)까지 주입해냈다는 점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을 생명력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최고의 참고자료가 옆 나라에 있었다는 걸 행운이라 봐야 하나?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니까.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에 대항하고자 너구리 사회는 군단을 조직하는데, 이를 주도하는 건 변신술에 능한 장로 너구리들이다. 범석이 초토화된 거리를 종횡무진하며 호포항이라는 공간을 스크린에 펼쳐보이는 과정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유바바의 온천장에 흘러들어와 살아남는 모습과 닮아 있는데, 온천장이 있는 세계는 젊은이와 노인, 신과 요괴가 구별 없이 공존하는 장소(이며 배척되고 대립되는 것은 인간)이다. <모노노케 히메> 또한 마찬가지. 아시타카가 속해 있던 에미시 일족은 호포항이 20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으로 재구축한 동아시아 공동체 사회의 중세적 원형이라 볼 수 있다.

물론 <호프>가 조립하려는 세계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은 지향점이 명백히 다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공동체 사회를 정신적/생태주의적 가치를 수호하는 영역으로 두고 인간 문명을 침략자로 규정한 뒤 두 세계가 충돌하는 양상을 그린다면 <호프>는 바깥을 정의하지 않은 총체적 공간 가운데 은밀히 불시착한 이방인, 기존의 인식체계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존재가 우리 눈앞에 갑자기 등장한 사건으로서 외계인을 그린다. 라캉 식으로 말하면 실재계의 출현이고, 칸트 식으로 말하면 물자체物自體의 발견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두 작품의 철학을 비교하려는 게 아니다. 다른 의도를 갖고 출발했으나, 최종적인 영화적 표현이 닮아 있음을 짚고 싶은 것이다. <벼랑 위의 포뇨>에서 바다의 여신 ’그랑 맘마레’와 남편 ’후지모토’의 관계, 후지모토가 인간 세계로 떠나려는 ’포뇨’를 되찾으려는 스토리는 <호프>의 외계인 황후 ’조르’와 그녀를 보좌하는 군인 ’마베이요’의 관계, 마베이요가 호포항 불시착 이후 실종된 조르의 아들 ’칼리’를 찾고자 한다는 결말부 스토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벼랑 위의 포뇨>의 그랑 맘마레와 후지모토

<호프>에서 외계인을 연기한 마이클 파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레버넌트, 에일리언, 봉준호와 박찬욱 Let’s go

한편, 성기(조인성)의 시퀀스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그리는 서부개척시대 장르물의 문법을 교과서처럼 따라간다. 말을 탄 채 들판을 질주하고, 총 한 자루에 의지한 채 숲속 추격전을 벌이고, 난데없이 나타난 곰(말이 안 통하는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레버넌트>의 배경이 한겨울 북아메리카라는 점이 미술적으로는 한 가지 다를 뿐이다. 서부극 + 복수 스릴러를 한국식으로 표현한 사례가 과거에도 있었기에 관객들이 <호프>의, 한국이라기엔 다소 이질적인 숲과 벌판의 미술적 표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걸로 보이는데,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최종병기 활> 등을 꼽아볼 수 있겠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강가 전투 시퀀스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의 세 주인공

<최종병기 활>의 청나라 추격대

불시착한 우주선의 내부 디자인은 명백히 <에일리언>의 그것이었고 (사실상 이 장르의 표준이다보니 유사하게 그리는 게 당연한 것 같긴 하다), 영화 내내 어촌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잉어들을 비추는 샷이나 최후 추격씬에서 마베이요가 보여준 4족보행 모드는 봉준호 <괴물>의 크리쳐 디자인을 연상케 한다.

<프로메테우스> 속 엔지니어의 조종석

전기톱을 들고 외계인 시체를 해부하는, 과격하면서도 젠틀한 보건소 의사는 박찬욱 <친절한 금자씨>, <박쥐>, <어쩔수가없다> 속 여성 캐릭터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했다.

최후반부 거대 함선의 추락씬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생각나게 했다. 지난 몇 년간의 블록버스터 영화 중 이런 장면을 표현했던 작품은 엔드게임이 유일하기도 했고, 캡틴 마블이 타노스의 함선을 추락시킬 때의 감정(엥? 갑자기?)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또한, 이 추락씬이 조르와 마베이요의 스페이스 오페라적 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연관성을 추측할 수 있었다.

<호프>의 거대 함선 추락씬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함선 추락 장면

의도보다 표현이 먼저다

여러 가지 장르 영화를 버무리는 것에 그쳤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호프>의 진정한 차별점은 여기에서 온다. 의도보다 표현이 먼저다. 시네마적 체험, 시각/청각적 재미, 즉각적인 플롯의 전개가 의도와 주제, 테마, 세계관을 설명하려는 욕구보다 앞서 있다. 즉, <호프>의 장르적 콜라주는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조립되었기에 설득력을 얻는다.

봉준호, 박찬욱 같은 작가주의적 감독들은 영화를 수평적으로 만든다. 모든 인물, 사건, 배경, 미장센은 감독의 의도를 표현한다는 일관된 목적 아래 조감도 속 건물들처럼 나란히 배치된다. 그러나 나홍진의 영화는 수직적이다. 주인공과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그들의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르적 문법을 찾는다. 그러고는 영화 속에 한데 몰아넣고 다층적인 레이어가 제멋대로 충돌하게 만든 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마치며: 왜 호프HOPE일까?

어떤 점에서 이 작품의 테마가 ’희망’인 걸까? 외계인들은 나름의 희망을 지닌 듯하다. 아들을 찾아 여왕의 처지를 복권한다? 도 있겠고, 황정민이 외계인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직전 동정심을 느꼈던 부분이라든지, 짝사랑하던 성기가(초등학교 임시 병원에서 의사의 고구마 선물을 회피했던 점, 성기가 외계인을 죽이는 데 성공하자 “오빠 사랑해!” 를 외쳤던 점, 성기가 죽자마자 약 15초에 걸친 클로즈업 샷을 비추었던 점을 고려했을 때) 어이없게 죽으면서 절망에 빠졌으나, 쿠키 영상에서 성기가 살아 있음이 밝혀지며 상황이 반전된 것 등등. 희망이라고 말할 요소들은 여기저기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모자라다. 후속작을 기획했다 하니(감독은 정확히 ’3부작’이라고 단정하진 않았다) 당연히 아직 주제의 전말이 밝혀지긴 이르다.

확실한 건 외계인이 인간 문명의 대척점으로서의 외계인이 아닌, 호포항이라는 세계 속에 추락한 낙오자, 상처입은 신처럼 작용하리라는 것이다. 해피엔딩을 예측하자면 범석의 동정심을 열쇠로 인간과 외계인이 극적인 화해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정도다.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더 정신없고 야망 넘치는 장르적 모험이 파생될지 기대가 된다.

마지막으로 비틀어보자면, 감독의 목표대로 후속작이 모두 완성되는 것이 ’호프’라면 ’호프’가 아닐까?

TAGS — 에세이 /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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