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서사의 위기> 인용문
서사는 현실을 완성하는 마술이었다
published at: 2024-07-27
books
본문 86p.
철학자 게르솜 숄렘 Gershom Scholem 은 하시디즘 이야기로 유대교 신비주의에 관한 글을 마무리한다. “바알 셈 토브가 피조물의 유익을 위한 어려운 일을 완수해야 했을 때, 그는 숲의 특정한 장소에 가서 불을 지피고는 명상에 잠긴 채 기도했다. 그러면 그가 실제로 행하고 목도한 모든 것은 그가 계획한 것과 똑같이 일어났다. 한 세대가 지나고 마지드 폰 메세리치가 큰일을 앞두고 같은 숲의 같은 장소로 가서 말했다. ‘더 이상 불을 피울 수는 없지만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서 모든 게 계획대로 되었다. 다시 한 세대가 지나고 사소우 출신 랍비 모세 뢰브도 큰일을 행해야 했다. 그도 그 숲에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말했다. ‘더 이상 불을 피울 수도 없고 기도가 잘되게 하는 특별한 명상법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행하는 숲속의 이 장소를 알고 있으니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또 한 세대가 지나고 랍비 이즈라엘 폰 리신이 계획된 큰일을 이행해야 할 때가 오자 자기 집 의자에 앉아 말했다. ‘불을 피우지도 못하고 적혀 있는 기도문도 말하지 못하고 더 이상 숲속의 그 장소도 알지 못하지만, 그 이야기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만으로 앞의 세 사람이 경험한 효과가 동일하게 일어났다.”
거듭해서 기억하는 것이 삶을 이룬다고 느낄 때
오랜만에 블로그 글을 쓴다. 마지막 글을 쓸 때로부터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직장도 바뀌었고 애인도 떠났으며 무엇보다 더 이상 성당에 다니지 않은 지 7개월째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기억한다. 신과 관계 맺던 시기, 국문학도이던 시절 소설을 쓰던 기억,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사건과 캐릭터가 점점 강한 힘을 행사하기 시작할 때의 느낌을 기억한다. 오래된 불행도 미래의 야망도 놓아주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거듭해서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동안 그 서사는 내 삶 어디선가 다시금 현현한다. 생각조차 고심해서 신중히 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