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es Days

채용을 하며 느낀 점

그저 평범한 직장에 불과한 개발자로서의 삶을 그들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published at: 2022-03-19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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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 채용을 위해 면접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현재의 비즈니스가 사업을 위해 이용하고자 하는 IT 분야와 코딩 교육 업계가 사람들을 유치하는데 사용하는 커리큘럼의 괴리는 사라지지 않겠구나, 라는. IT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환상을 가지며 이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결국 IT는 기업이 원하는 상품/서비스를 구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도구는 현재에 이르러 미친듯이 현란하고 정신없는 방식으로 변주되며 사용되고 있다. 많은 전문 개발자들도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헥헥대는 게 현실인데, 코딩 교육 업계는 “3개월 공부하고 커리어 전환하세요!” 라는 달콤한 말로 거의 천만원에 육박하는 교육비를 요구하고 있다. 그래놓고 가르쳐주는 건 요즘 홈페이지 개발에 쓰이는 도구 사용법 조금이 전부다.

광고를 철썩같이 믿고 돈을 지불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지원서를 내밀었다. 나 또한 학원 출신의 개발자이므로 각 지원자들의 절박함이 이력서에서 느껴져 안타까웠다. 개발과는 아무 상관없는 영업, 미술, 언론, 직업군인 등등의 이력이라도 종이에 채워 넣을 수밖에 없었을 마음, 그리고 그 이력들이 어떤 방식으로 개발 공부에 도움이 되었는지 어필하려는 자소서 내용들. 3년 전의 내 모습과 정말이지 같았다. 이력서를 내던 입장에서 받아보는 입장으로 바뀐 뒤에 드는 생각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실제 업계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과 학원이 이들에게 심어 준 희망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기업 입장에서 백엔드든 프론트엔드든, 이런 식으로 양산된 웹 개발자는 생산된 상품/서비스를 고객 앞에 진열하는 소모성 인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웹 개발 지식만으로 커리어를 만들어간다면 10년 이상 자리를 유지하기 힘들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올바른 UI/UX를 구현해 고객의 사용자 경험을 상승시키고,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전송/적재하는 그 모든 과정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냐” 라고 반박하면 곤란하다. 웹 개발자가 UI/UX에 관여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서비스 디자이너/기획 직무를 웹 개발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웹 개발자가 데이터 관리에 관여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웹 개발자가 DBA 직무까지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모든 직무는 구별되어 있으며, 단지 당신의 개발자가 (혹은 당신이) 회사의 사정 상, 혹은 자기 발전을 위해 여러 업무를 떠안고 있을 뿐이다.

학원은 지금 가르쳐주는 내용만으론 회사에서 소모품으로 쓰이고 끝날 거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의 지속적인 성장이 중요하다”라는 말로 커리어 전환의 본질적 리스크를 수강생 본인에게 전가한다. 그리고 가르쳐주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뜯어간다. 내가 보기엔 지나치다. 2018년 당시 내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4개월 코스의 시세가 350만원이었다. 만 4년이 지난 2022년 현재, 코로나 여파로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3개월 코스의 시세는 800만원가량이다. 심지어 어떤 학원은 수강생이 취업할 경우 연봉의 일정량을 후불로 받아가는 계약을 맺기도 한다. 그렇다고 4년 전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가?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 탓이든 입문자에게 맞는 난이도를 제공하기 위해서든 커리큘럼은 바뀐 것이 없다. 그리고 대부분은 학원이 제공해 준 포트폴리오를 있는 그대로 다시 구현하는 것조차 해내지 못한다.

일단 업계로 들어오면, 대체 가능한 인력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학습을 이어나가야 한다. 맥북과 아메리카노를 들고 우아하게 판교 빌딩숲을 거니는 고연봉 워라밸 직장인의 모습은 언론과 유튜브가 심어준 환상에 불과하다. 주니어로서의 1-2년이 지나는 순간부터 어떤 직장인이나 실감하는 생존의 문제는 개발자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엄습해오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위한 커리어 전환이란 말인가? 어떤 직업을 선택했더라도 직면하게 될,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나?” 라는 질문을 또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말이다.

채용공고를 오픈한 지 일주일만에 20명이 넘는 학원 출신 지원자가 몰려들었음에도, 1차 테스트 과제를 어떻게든 풀어서 답신한 사람은 고작 2명에 불과했다. 놀랍기도 했고 걱정되기도 했다. 문제를 풀지도 않고 지원을 포기한 90%의 사람들은 과연 어디에 안착하게 될까. 여느 직군이나 다를 바 없는, 그저 평범한 직장에 불과한 개발자로서의 삶을 그들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소감

큰 반응을 기대하고 쓴 글은 아닌데, 14,500건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다. 많은 분들이 IT의 현실과 환상의 괴리에 대해 많이 공감하고 게셨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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